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생애 (문단 편집) === 1804년 황제 선포 === 그리하여 1804년, 자신을 [[황제]]로 선포하고 [[교황]]에게 대관 받아 나폴레옹 1세에 등극한다. 자유, 평등, 연대를 가치로 내건, 소위 근대 공화정의 출발을 알렸다는 [[프랑스 혁명]]의 결과로는 좀 허무하지만, 지금과는 달리 유럽사의 흐름에서 보았을 때 황제의 존재와 공화정이 반드시 모순되는 것은 아니었다. '유럽 최초의 황제'로 불리는 로마의 [[아우구스투스]]가 기존의 [[로마 공화정]]을 겉으로는 부정하지 않고 로마 시민과 원로원과의 협치를 '''표면에''' 내세웠던 것처럼 나폴레옹은 '''명목상''' 프랑스 혁명의 공화주의를 부정하지 않았으므로 프랑스라는 나라를 사적으로 소유한다는 의미인 '''프랑스 황제 (Empereur de France)'''가 아니라 프랑스 국민의 지지로 황제가 되었다는 의미인 '''프랑스인의 황제 (Empereur des Français)'''라는 칭호를 사용하였으며,[* Philip Dwyer, Citizen Emperor: Napoleon in Power (2013) p 129] 나폴레옹과 그를 지지하는 지식인들은 로마 공화정이 로마 제정으로 바뀐 것을 근거로 삼아서 제정의 성립을 합리화했다. [* 거기에 나폴레옹이 올랐던 황제 직위는 로마 황제의 위치와 동일했다. 로마 황제 또한 정확히는 ''''로마인의 황제''''로서,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가 로마 시민과 원로원의 추대를 받아 올랐던 자리이기 때문. 괜히 나폴레옹이 로마 황제를 명분에 갔다쓴 게 아니다.] 안정적인 정권의 성립을 바라던 프랑스 국민들은 나폴레옹의 즉위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1804년에 나폴레옹의 황제 즉위에 관한 국민투표가 있었는데 찬성이 3,521,675표, 반대가 2,579표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